지베르니와 더불어 파리 근교 여행지로 많이 사랑받고 있는 고흐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다녀왔습니다. 이 곳은 고흐가 마지막 여생을 보낸 장소로 약 2달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70여점의 작품을 남긴 곳입니다. 1일 1작품이라는 왕성한 활동을 했네요.
고흐 마을 곳곳에는 고흐가 그렸던 작품과 그 작품의 대상이 되었던 성당, 시청 등이 있는데요. 파리 근교의 한적함과 고흐의 작품들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여행지입니다.
고흐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 가는 방법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지베르니 보다는 파리에 좀 더 가깝습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면 편한데요.
- 파리 북역 -> 오베르 쉬르 우아즈 (Auver Sur Oise)
- 생 라자르 역(Gare Saint Lazare) -> 퐁투아즈 역(Gare Pontoise) -> 오베르 쉬르 우아즈 (Auver Sur Oise)
고흐마을 관람 포인트
고흐 마을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데요. 이 곳에 들리는 분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들을 뽑아보자면,
- 고흐동상
- 시청
- 여관 건물과 와인, 그리고 압생트
- 성당
- 밀밭
- 고흐의 무덤
이정도가 되겠습니다. 관람 포인트들을 도는데 거리도 거리지만 언덕이 많아서 운동이 조금 됩니다. ㅋㅋ
고흐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 후기
지베르니의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파리근교 가이드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고흐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향했습니다.
파리의 넓은 목초지를 지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도착했습니다. 따로 관광지가 있는 것은 아니고 고흐가 생의 마지막에 머물렀던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입니다
전세버스가 잠깐 동네의 공원에 멈춰서고 투어 관람객들이 모두 내렸습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공원에는 '고흐 동상'이 있는데요. 동상으로 만들어진 고흐의 모습이 그의 화풍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고흐 동상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붓을 만지면, 고흐의 미적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어서 이곳에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한번씩 만지고 갑니다. 관광지에 있는 동상들과 마찬가지로 붓 부분만 반짝반짝 닳아있습니다. ㅎㅎ
공원에서 잠시 쉬며 화장실에 다녀오고 고흐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한바퀴 돌며 고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흐 동상이 있는 공원에서 오른쪽으로 잠깐 내려가면 시청건물이 있습니다.
고흐가 그린 시청건물입니다. 시청 건물 바로 앞에 전시되어 있는데요. 고흐는 이 그림을 1890년 7월 14일에 그렸다고 합니다.
100년이 넘은 시청 건물치고는 깔끔하게 보이는데요. 사실은 이 시청건물은 전쟁 중에 소실되었고, 그 이후 복원된 것이라고 합니다. 복원할 때 고흐의 그림을 참고해서 복원했겠죠?
시청의 길 맞은편에는 그 유명한 라부여관(Auberge Ravoux)이 있습니다.
고흐는 이 라부여관에서 2개월간 묵었으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시청도 이 곳에서 그리지 않았을까요?
이 라부여관은 '도미니크 샤를 얀센(Dominique-Charles Janssens)'라는 사업가의 소유입니다. 그는 벨기에 출신의 사업가로 고흐의 광팬이라고 하는데요. 도미니크는 1985년 이 라부 여관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두 달 동안 입원하게 됩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친지로부터 고흐의 서한집을 선물받았다고 하는데요. 고흐의 서한집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와 쪽지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그로부터 2년뒤인 1987년 얀센은 35만 7000달러를 들여 이 라부여관을 인수하고, 700만 유로를 들여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100만 유로를 들여 주변 집들마저 사들여서 라부 여관이 온전하게 보존되도록 힘을 쏟았습니다. 주변의 난개발로 라부 여관의 분위기가 흐려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라부여관 앞에는 테이블이 놓여있고 두 잔의 와인이 세팅되어 있습니다. 한잔은 고흐를 위한 것이고 나머지 한잔은 그의 후원자이자 동생인 테오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빈센트 반고흐의 암울한 삶 뒤에는 그를 후원했던 동생 테오 반 고흐가 있습니다. 살아생전 번번한 밥벌이가 없었던 고흐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테오는 진정으로 형 바라기였습니다. 정신병이 있었던 형이 치료를 받으며 예술 활동을 할 수 있게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자리를 마련하고, 여관비와 작품활동을 위한 돈까지 지원해주었던 동생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테오 반고흐와 주고 받았던 편지를 모은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보면 이 둘사이가 얼마나 각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관의 옆 건물에는 '압생트'라는 술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압생트는 스위스에서 유래된 술로 '녹색요정', '녹색악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술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55~75도에 이르는 독주로 당시에는 독성이 있어서 환각 작용을 일으켰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찾아보면 그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도 있고요.. 알콜 도수가 높은 독주인건 분명합니다)
술을 마시는 잔에는 각설탕이 올려져있는데요. 술을 저 각설탕에 흘려서 조금씩 녹여 같이 먹는다고 합니다.
건물 뒤쪽으로 돌아들어가면 한 여인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려준 라부 여관 주인의 딸이었던 '아델린 라부의 초상(Portrait of Adeline Ravoux)'입니다. 1890년 6월 빈센트 반 고흐가 라부 여관의 2층 자신의 여관방에서 그려준 당시 15살의 여관 주인 딸의 초상입니다.
여관 주인의 딸은 고흐가 스스로 권총을 쏴서 피투성이가 된 채 여관으로 걸어들어오는 장면을 처음으로 목격한 목격자이기도 합니다. 고흐가 사망하고 이 소녀는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릴 때 쉬지 않고 담배를 피워서 연기 때문에 너무 혼이났던 기억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흐의 괴팍한 성격도 많이 말해줬다고 합니다. )
여관을 돌아 성당쪽으로 올라가기 전에 벽에 그림한 점이 걸려있습니다. 구불구불한 계단이 있는데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면,
이 곳을 그린 겁니다. ㅋㅋ
계단의 오른쪽에 있는 길로 올라갑니다. 정원이 있는 서울 평창동의 부자집 동네 같은 분위기의 거리입니다. 이 길로 쭉 올라가면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이 나옵니다.
좀 더 걸어가면 소박한 느낌의 성당이 나옵니다. 이 성당이 바로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노트르담 성당인데요. 지금은 한참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벤치에 앉아 가이드님의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고흐와 함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함께 있었던 그의 라이벌이자 친구인 고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갱은 증권사에 다니던 주식 중개인이었습니다. 주식 중개인으로 일하던 도중 35세의 나이에 갑자기 그림을 그리겠다며 전직을 해버립니다. 고갱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인데요. 하지만 화가로서 성공적이지 못했던 고갱은 유럽을 떠나 파나마로 떠났지만 그곳의 사정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후 고갱은 남태평양의 마르티니크 섬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마르티니크 섬에서 돌아온 고갱은 자신의 작품을 거래하는 테오 반 고흐를 만나게 되고, 그의 형인 빈센트 반 고흐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고흐는 고갱에게 자신이 있는 아를로 와주기를 간청했고, 고갱은 아를에 있는 고흐의 집인 '노란 집'이라는 곳에서 9주간 고흐와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예술관 차이 때문에 불화가 생겼고, 고흐가 자기 귀를 자르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자 고갱은 떠나게 됩니다. (고갱이 고흐의 귀를 잘랐다는 설도 있지만 그의 성격이나 여러 정황을 봤을 때 그냥 설이라고..)
(이후 고갱은 다시 유럽을 떠나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갔다고 하는데요. 타히티는 제가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입니다. 신혼여행으로 갈까 했었는데, 너무 멀어서... ㅜㅜ)
공사중인 노트르담 성당의 오른쪽 언덕위로 잠깐 올라가면 고흐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이 성당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공사중이라 어수선한 모습이 약간은 아쉬웠는데요. 그림과 실물을 비교해보면 참 희안합니다. 바닥은 낮인데 하늘은 밤이고, 직선의 성당 지붕은 실제로는 모두 직선인데 그림에서는 구불구불하고. 고흐의 불안한 심리 상태가 작품에 반영되어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좁은 길을 따라 언덕위로 올라가면 고흐가 권총으로 자신을 쏜 밀밭이 나옵니다.
이 황량한 밀밭에서 고흐는 자신을 권총으로 쐈는데요. 고흐가 자살을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고흐를 권총으로 쏜 것은 동네 불량배라는 설이 있습니다. 동네에 있던 두 명의 소년이 우발적으로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설인데요. 고흐가 소년들이 쏜 총을 맞고서도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총을 쏜 것으로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스스로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죽음이 다가왔을 때, 이를 받아 들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다른 설로는 고흐를 진료했던 정신과 의사인 가셰 박사가 총으로 고흐를 쐈다는 설도 있습니다. 가셰 박사의 딸인 마가리트 가셰가 고흐를 너무나도 사랑했다고 합니다. 고흐는 자신의 상황에서 마가리트 가셰를 받아 들일 수 없다고 거절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사랑은 한결 같았다고 합니다.
고흐가 총탄에 맞았을 때, 총알을 제거하면 살 수도 있었다고 했지만 가셰 박사는 정신과 의사라 수술을 할 수 없다며 외과 수술을 거절 했습니다. 하지만 가셰 박사는 전직 군의관 출신으로 총알을 제거 할 수 있었다는게 많은 사람들의 의견입니다.
밀밭을 따라 오른쪽으로 쭉 따라 걸어가면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공원 묘지가 있습니다.
이곳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무덤이 있는데요.
많은 석관들 사이에 풀로 뒤덮인 고흐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 옆에는 그의 동생인 테오도 같이 잠들어 있는데요. 고흐가 사망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테오도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원래는 네덜란드에 안치되어 있었지만 테오의 형 사랑을 옆에서 지켜봤던 테오의 아내가 1914년 고흐 무덤 옆으로 옮겨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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